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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성 되찾기: 크립토에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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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성 되찾기: 크립토에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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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초고를 검토해 주신 Mert, Matt, Tilo, Brady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들어가며

감시는 더 이상 강요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인프라입니다. 우리는 투명성이 도덕적 가치가 되고, 가시성이 미덕의 신호가 되며, 금융과 정체성의 구조가 모든 것을 아는 거울로 합쳐진 세계에 살게 됐습니다.

이는 “개방성”이라는 이름으로 홍보됩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면 숨길 것도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제로 이것은 자동 원형감옥입니다. 자발적 노출로 스스로 유지되는 시스템이며, 감시탑은 피드와 원장, 대시보드로 대체됐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감시하면서 이를 자유라고 부릅니다.

크립토는 긴 겨울 뒤에 약속된 여름이었습니다. 중앙화된 세력에 대한 의존을 깨뜨리고 개인에게 주권을 돌려주려 했습니다. 변화, 즉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저항하던 바로 그 시스템의 논리를 복제했습니다. Bitcoin은 금융 활동을 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영원히 추적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해방의 꿈은 행동과 관계, 의도를 기록해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일련의 증거 기록으로 변했습니다. 

크립토가 우리를 해방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왜 또 다른 감시 도구가 됐을까요? 우리는 왜 타도하려는 바로 그 시스템에 삶의 모든 면을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노출하고 있을까요? 

이제 프라이버시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일까요? 

프라이버시는 데이터의 부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포획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디지털 시대에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하고 진정한 길은 불투명성을 되찾고, 알고리즘의 시선 밖에 존재할 권리를 되찾는 것입니다. 기계 너머에서 색인되지 않은 채 살아갈 권리는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크립토를 대중화하려는 과정에서 잊힌 듯합니다. 크립토의 목적을 다시 세우기 위해 싸워야 하며, 불투명성은 가장 급진적인 저항 방식입니다.

이 저항을 시작하려면 신자유주의적 성향부터 극복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불가피성

소련의 붕괴는 냉전의 종식이자 자본주의에 맞설 유일하게 실현 가능한 대안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가능성을 지닌 체제들 사이의 긴장이었습니다. 한쪽이 무너지자 다른 쪽은 더 이상 자신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를 넘어 환경, 즉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자체가 됐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지배적 위치에 올랐고, Francis Fukuyama 같은 일부 학자는 이를 역사의 종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인류가 진화한 끝에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보편화가 인간 정부의 최종 형태가 됐다는 주장입니다. 더 이상 대안은 없고, 관리되는 미래 속 최적화만 남았습니다. 정치가 최적화로 축소되면 모든 경계가 협상 대상이 됩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가장 오래된 경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계 자체가 비효율로 보이기 시작하고, 시장에서 먼저, 이어 자아에서 제거해야 할 마찰로 취급됩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와 동의어가 된 자유주의적 서구 민주주의, 즉 승리한 세계 질서가 1991년에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이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자유 시장을 도덕적 진리로 무기화한 양극화의 주역 Ronald Reagan과 Margaret Thatcher가 설계했습니다. 국가는 문제였습니다. 공공의 삶은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자유는 경쟁을 뜻했습니다. Thatcher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개인과 가족만 존재한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렇게 집단은 해체됐습니다. 복지는 의존이 됐고, 공공은 비효율이 됐으며, 연대는 의심받게 됐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지고한 존재로 추앙받으며 현재의 번영에 대한 모든 영광과 찬사를 차지했습니다. 학교부터 인간관계까지 모든 것이 시장의 관점과 논리로 재해석됐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진정한 혁신은 욕망의 사유화였습니다. 시장이 욕망 자체를 식민화하자 저항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경제적·정치적 질서가 아니라, 광범위하게 스며든 음험한 심리적 질서였습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세계

수십 년이 흐르면서 시스템은 더 이상 자신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대신 문화적 분위기이자 일상의 형이상학이 됐습니다. 우리는 분투와 최적화, 생산의 분위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스타트업에는 매우 좋은 문화일 수 있지만, 삶의 모든 면에 빠짐없이 적용되면 해로워집니다.

Mark Fisher는 대표작 *Capitalist Realism: Is There No Alternative?*에서 이 참혹한 현실을 개념화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문화 생산과 경제 활동, 일반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지배적인 분위기가 됐다고 주장합니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든 것은 현재의 세계관을 강화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자본주의와 양립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빠른 자동차와 멋진 옷을 원하고, 다른 사람을 돌보겠다는 이타적 이유로 부를 원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정치를 해결했습니다. 다른 대안은 거의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Bitcoin이 불길과 잿더미 속에서 탄생한 2008년 금융 위기를 보겠습니다. 우리는 은행을 구제했습니다. 유능해서도, 단순히 선의의 실수를 해서도, 그것이 옳은 일이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국가와 은행 시스템의 경계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구제했습니다. 은행은 자유 시장에서 실패한 민간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공적 보증과 정부 후원 주택담보대출 기관, 은행의 생존을 경제의 생존과 동일시한 중앙은행과 얽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실패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징후입니다. 어떤 기관이 실패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히면, 실패할 만한 기관인지조차 물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라캉적 현실에 자리 잡은 탈정치적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의 해석에 맞지 않는 사실을 거부하는 이데올로기 기반의 세계 이해입니다. 현재 방식보다 나은 대안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은 이것이 인류 발전의 완전한 정점이라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순진한 생각일 뿐입니다. 

단순한 저항 행위조차 현재의 세계 질서를 강화합니다. 예를 들어 Fisher는 역사의 종말이 선언된 뒤 등장한 세대의 절망을 대변한 Kurt Cobain의 끔찍한 무기력과 분노를 다뤘습니다. 모든 행동이 일어나기도 전에 예측되고, 추적되고, 매수되고, 판매되던 세대입니다. Cobain도 그 구경거리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대중적인 밴드가 MTV에 출연해 “MTV는 엿 먹어라”라고 항의하는 것보다 MTV에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 있을까요? 서서히 모든 것이 진부해집니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려던 열망은 점차 최악의 영향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바뀝니다.

이제 세계는 자기 자신만을 참조합니다. 모든 시위는 캠페인이 됩니다. 모든 비판은 콘텐츠가 됩니다. 모든 저항 행위는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가 됩니다. 우리는 정실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은 매우 특정한 형태의 자본주의 안에서 살아가고 숨 쉽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경제와 정체성의 경계는 무너졌습니다. 시장은 우리가 무엇을 사는지뿐 아니라 누구인지까지 집어삼키고, 의미를 상품화합니다. Elon이 Parag Agrawal에게 보낸 문자는 우리 시대정신을 규정하는 신성한 밈의 경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생산하는 것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성과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공연에서 투명성은 최고의 미덕이 되어 대시보드와 지표, 피드로 나타납니다. 가시성은 도덕적 범주가 됐습니다. 생산하는 모습이 보이면 선하고, 투명하면 신뢰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자연스럽게 모든 클릭과 구매, 움직임이 알고리즘을 섬기는 헌신적 행위가 됐습니다. 

가시성의 도덕화가 심해지면서 우리는 시스템을 내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과를 보이고 최적화하며 수치화하라는 요구는 새로운 권력 구조를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의 필요에 가장 잘 맞는 구조에는 이미 수 세기 전에 만들어진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원형감옥입니다. 

자동 원형감옥과 자발적 감시

원형감옥은 감옥에서 시작됐습니다. 18세기 영국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인 Jeremy Bentham은 통제 시스템이 내장된 기관 건물을 설계했습니다. 발상은 끔찍할 만큼 단순했습니다. 원형 건물을 짓고 중앙에 감시소를 두는 것입니다. 공장과 학교, 정신병원, 요양원, 병원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었지만, Bentham은 특히 감옥에 이 개념을 적용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완벽한 원형 감방 한가운데 Barad-dûr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수감자는 자신이 감시당하는지 알 수 없기에 언제나 감시당하는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Michel Foucault는 Bentham의 원형감옥을 현대 사회의 은유로 바꿨습니다. 감시에 더 이상 벽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감시는 학교와 공장, 기관, 사무실 안에 존재합니다. 영국의 CCTV 카메라 형태로 거리에도 존재합니다. V for Vendetta와 1984를 탄생시킨 사회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역설적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법을 배우면서 권력은 더 이상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됐습니다. 시선은 내면화됐습니다.

Byung-Chul Han은 분석을 한 단계 더 확장합니다. Han은 Psychopolitics에서 규율 권력이 Foucault식으로 내면화된 형태라 해도 여전히 외부 구조를 전제한다고 주장합니다. 벽과 경비원, 기관, 어딘가의 감시탑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 후계자인 심리정치는 자유에 맞서기보다 자유를 통해 작동합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하고, 그 자기 착취를 자아실현의 한 형태로 경험합니다. 번아웃은 스스로의 감독관이 된 주체의 소진을 보여주며, 이 상태를 대표하는 병리가 됩니다. 타도할 경비원은 없습니다. 자신이 경비원이며, 일에 지쳐가면서도 그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Han은 The Transparency Society에서 투명성이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권력이라고 설명합니다. 전면적 가시성을 도덕화한 사회는 이를 완성했고, 진정한 정치와 인격에 필요한 비밀과 신비, 알 수 없는 타자를 해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원형감옥보다 훨씬 효율적인 자동 원형감옥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관찰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스템입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누가 감시를 자발적으로 구독하겠습니까? 간단히 말해, 우리는 감시를 기분 좋은 일로 만들었습니다. 방문하는 모든 사이트에서 쿠키를 허용하고, 서비스 약관을 읽지 않은 채 동의하며, 위치 공유를 켜고, 식사를 게시하고, 보이지 않는 시청자에게 일상을 브이로그로 보여줍니다. 대시보드와 지표로 자신을 측정합니다. 걸음 수와 거래, 승리, 수면 점수, 실제 심장 박동까지 추적하면서(Whoop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를 “투명성”이라고 부릅니다.

감시탑은 피드로 대체됐습니다. 경비원은 알고리즘으로 대체됐습니다.

Shoshana Zuboff는 이를 감시 자본주의라고 부릅니다. 개인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하고 상품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출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갈망합니다. 게임화를 통해 노출을 기분 좋은 경험으로 느끼도록 시스템이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표적 광고를 몇 개 더 보고 Amazon이 다음에 읽을 책을 섬뜩할 만큼 잘 추천하게 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모두 무해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예를 들어 Cambridge Analytica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운영된 영국의 정치 컨설팅 회사였습니다. Facebook에서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심리 프로파일링과 결합해 유권자 행동을 예측하고 조작한 것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개인의 호불호와 친구, 클릭, 재미로 참여한 퀴즈를 알면 그 사람의 견해를 움직일 맞춤형 정치 광고를 보여줄 수 있다는 발상이었습니다. Cambridge Analytica는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 국민투표에 개입해 “설득 가능한” 유권자가 EU 탈퇴에 투표하도록 지원했습니다. 결과가 어땠는지 보세요. 또한 공화당 예비선거와 2016년 여름 Trump 캠프에도 관여했습니다. 이 역시 결과가 어땠는지 보세요. 그 밖에도 호주, 인도, 케냐, 몰타, 멕시코 등의 선거에 정치적으로 개입했습니다. 2018년 경영진은 전 세계 200건이 넘는 선거에 관여했다고 밝혔습니다. 모회사인 SCL Group이 영국 국방부와 심리전을 수행했다는 사실도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단지 표적 광고 몇 개가 늘어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쯤 되면 은박지 모자를 쓰고 음모론적 헛소리를 늘어놓는 기분이지만, 이 모든 것은 잘 기록된 사실이며 훨씬 어두운 진실을 드러냅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감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델링되고 있습니다. 

Foucault가 결코 예측하지 못한 것은 감시 대상이 감시의 설계자가 되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원형감옥은 더 이상 위에서 강요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픽셀 하나, 게시물 하나, ‘좋아요’ 하나씩 직접 원형감옥을 만듭니다. 소셜 미디어로 시작한 것은 사회 공학이 됐습니다. 금융이 디지털화되면서 같은 논리가 이어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립토는 이를 가장 높고 순수한 형태로 끌어올립니다. 모든 트랜잭션과 주소가 모두에게 공개됩니다. 블록체인은 일종의 탈중앙화된 원형감옥, 즉 투명성 그 자체가 됐습니다. 모든 노드에 감시탑을 복제해 극도의 판독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누구나 모든 것을 영원히 볼 수 있습니다. “만약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 결과 프라이버시를 의심하는 도덕 경제가 생겨납니다. 왜 트랜잭션 금액을 숨깁니까? 방금 왜 Tornado Cash를 사용했습니까? 왜 Monero로 브리지했습니까? 

불투명하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 됩니다. 

이 시스템은 크립토에서 시작되지 않았지만, 크립토가 완성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어떻게 이르렀는지 이해하려면 Bitcoin의 탄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Bitcoin이 저버린 약속: 원형감옥의 증폭

Bitcoin은 감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불투명성에 대한 저항에서 탄생했습니다. 2008년, 세계는 자체적인 복잡성과 안일함 아래 붕괴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시련과 고난을 견뎌야 했습니다. 은행이 무너지고 정부가 돈을 찍어냈으며, 그 비용을 부담한 사람들은 해당 기관이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Bitcoin은 현대 금융의 블랙박스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너무 불투명해 스스로 만든 거짓말 아래 무너진 중개자 시스템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제시된 해법은 급진적인 투명성이었습니다. 누구나 보고 사용해 진실에 대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부패하지 않는 공개 원장이었습니다. Satoshi Nakamoto의 “신뢰하지 말고 검증하라”는 답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했습니다. 최초의 블록에는 코드 속에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하지만 Bitcoin은 부패를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고귀한 추구 과정에서 감시를 불가피하게 만들었습니다. Bitcoin은 인간 활동을 영구히 기록하는 기념비입니다. 과거 규제 준수 체계와 유료 장벽, 금고 뒤에 비축됐던 데이터를 이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전례 없는 수준의 투명성은 우리를 감독에서 해방하기보다 감독을 자동화했습니다.

그 결과 Bitcoin의 변경 불가능한 원장을 원형감옥 인터페이스로 바꿀 수 있는 개인과 기업, 기관이라는 새로운 사제 계급이 탄생했습니다. 이는 2022년 오타와에서 벌어진 코로나 시대 트럭 운전사 시위 때 뼈아프게 드러났습니다. 시위대가 백신 의무화에 반대해 집결하자 캐나다 정부는 비상 권한을 발동해 시위대와 기부자의 은행 계좌를 모두 동결했습니다. 호송대를 지원하는 데 사용된 Bitcoin 지갑은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추적돼 압류됐습니다.

Bitcoin의 잘못, 즉 가장 중대한 잘못은 투명성을 신뢰로 착각한 것입니다. 투명성은 기관의 미덕이지 개인의 미덕이 아닙니다. 인간의 삶에 적용되면 은근한 강압 시스템이 됩니다. 프라이버시를 의심하는 도덕 경제를 낳기 때문입니다. 함께 말해 봅시다. 불투명하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Bitcoin이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트랜잭션을 인증할 제3자 중개자 없이 작동하는 P2P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최초로 구축했습니다. 그 기원에는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기 위해 암호학과 암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정체불명의 천재 코더들이 있습니다. 암호화는 프라이버시를 위한 도구, 즉 “세상에 자신을 선택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힘”을 지닌 도구라는 발상이었습니다. 이 정체불명의 천재 코더들은 사이퍼펑크라고 불렸습니다. 

사이퍼펑크

대부분의 사람이 이제 막 전화 접속 인터넷을 접하던 시절, 프로그래머와 암호학자, 자유지상주의자, 아나키스트, 해커, 학계의 악동들이 모인 잡다한 메일링 리스트는 디지털 세계가 자유를 위한 주요 전장이 되리라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강력한 암호화를 군수품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술 발전이 동구권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만든 냉전 시대의 수출 통제 규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공개된 환경에서 암호화 작업을 하는 사람은 공산주의자에게 옐로케이크를 보내는 사람처럼 취급됐습니다. 그 결과 Adam Back의 악명 높은 군수품 티셔츠가 탄생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시위로 수출 제한 대상인 RSA 암호화 소스 코드를 인쇄한 티셔츠입니다. Richard White는 RSA 암호화 문자열을 문신으로 새겼습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고 Phil Zimmermann의 PGP 암호화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면서 법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한편 NSA는 모든 기기와 표준, 프로토콜에 백도어를 넣도록 조용히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해 충돌과 시위, 암호화의 확산은 최초의 “크립토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크립토”는 “가격 상승”이 아니라 암호학을 뜻했습니다.

사이퍼펑크는 프라이버시가 자유의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치나 우려 사항, 틈새 관심사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감시 기술이 가능해지면 정부가 이를 광범위하게 사용할 것이며, 실제로 그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따라서 의미 있는 유일한 저항은 기술적 저항입니다. 시위나 정책이 아니라 코드를 통한 저항입니다. 

Eric Hughes는 A Cypherpunk’s Manifesto(1993)에서 “[ㅍ]라이버시는 전자 시대의 열린 사회에 필수적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어서 “[우]리는 정부와 기업 또는 기타 대규모 조직이 프라이버시를 허락해 주리라 기대할 수 없다… 프라이버시를 누리고 싶다면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직접 지켜야 합니다.

사이퍼펑크는 오늘날 크립토라고 부르는 것의 초기 프로토타입을 구축했습니다.

  • David Chaum은 디지털 현금과 영지식 증명을 발명했습니다
  • Nick Szabo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최초로 이론화했습니다
  • Wei Dai는 Bitcoin과 놀랍도록 유사한 익명 분산형 시스템인 b-money를 제안했습니다
  • Adam Back은 스팸 방지를 위한 작업 증명 메커니즘 Hashcash를 만들었습니다
  • Hal Finney는 Bitcoin보다 5년 앞서 Hashcash를 사용한 재사용 가능 작업 증명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그들은 ETF와 연금 제도를 통해 국가가 결국 승인할 시스템이 아니라, 국가가 규제할 수 없는 시스템을 설계하려 한 사보타주 활동가들이었습니다. Bitcoin은 그들의 암호학을 물려받았지만 정치는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사이퍼펑크의 목표는 언제나 프라이버시였습니다. 그들은 관찰 불가능성을 원했습니다. 공개 흔적을 남기지 않는 트랜잭션, 추적할 수 없는 통신, 행동과 분리된 정체성, 국가나 기업이 수익화할 행동의 부산물을 만들지 않는 조정 가능성을 원했습니다. Bitcoin은 이중 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작업 위에 구축됐지만, 그 과정에서 불투명성을 희생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Chaum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인터넷이 대중에게 공개되기도 수년 전인 1982년에 블라인드 서명과 익명 디지털 현금을 발명했습니다. 1990년대 초 DigiCash를 설립해 Deutsche Bank와 계약을 맺고 실제로 작동하며 추적할 수 없는 전자 결제를 개발했습니다. 기술은 작동했습니다. 은행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World Wide Web을 들어보기도 전에 프라이빗 디지털 경제를 위한 인프라가 존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DigiCash는 1998년에 파산했습니다. 인터넷은 여전히 신기한 기술이었고 아직 약탈적으로 변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감시를 걱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눈에 띄기를 원했습니다. 훗날 자동 원형감옥에 동력을 공급할 충동은 이미 배아 형태로 존재했고,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면 들불처럼 번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Chaum은 누구도 자신이 걸렸다고 믿지 않았고, 실제로는 걸린 줄조차 몰랐던 질병의 치료제를 팔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 신용카드와 PayPal을 선택했습니다. 편리하고 중앙화됐으며 추적 가능한 방식입니다. 프라이버시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더 쉽다는 이유로 감시를 택했습니다.

Hal Finney는 그 맥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메일링 리스트 초기부터 활동한 사이퍼펑크였으며, 탈중앙화 화폐를 가능하게 할 암호화 도구를 연구했습니다. Finney의 재사용 가능 작업 증명 시스템은 Bitcoin의 직접적인 전신이었습니다. Satoshi Nakamoto가 Bitcoin 백서를 발표했을 때 Finney는 관심을 보인 소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Bitcoin 트랜잭션을 받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2009년 1월 12일 Satoshi가 직접 10 BTC를 보냈습니다. Finney는 Bitcoin의 가능성과 타협을 가까이서 지켜봤으며, 2014년 사망할 때까지 디지털 시스템의 프라이버시를 굳건히 옹호했습니다.  

Bitcoin은 불투명성을 열렬히 지키려 한 커뮤니티 안에서 탄생했습니다. Satoshi는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없이 이중 지출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해법은 우아했습니다.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공개 원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파우스트적 거래였습니다. 암호학은 사이퍼펑크적이었습니다. 아키텍처도 사이퍼펑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판독 가능성은 사이퍼펑크가 추구한 모든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신뢰 없는 검증 가능성은 노력 없는 감시도 의미했습니다. 모든 트랜잭션과 주소, 가치 흐름이 영구적으로 기록돼 모두에게 공개됐습니다. Bitcoin을 부패하지 않게 만든 특성이 포렌식 측면에서는 완벽하게 만들었습니다. Bitcoin은 프로토콜 수준에서 자동 원형감옥을 재현했습니다. 기관에 책임을 묻기 위해 설계된 투명성이 오히려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메커니즘이 됐습니다. 온체인 분석 기업과 OFAC 제재, 법 집행 기관의 강화된 수사는 필연적이었습니다.

업계는 이 모든 것에 대해 프라이버시를 복원하는 대신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Coinbase에서 Zcash를 구매한다고 사이퍼펑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프라이버시는 구매하는 토큰이든 켜고 끄는 기능이든 하나의 제품으로 여겨집니다. 사이퍼펑크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사이퍼펑크는 프라이버시를 디지털 존재의 기본 상태로 봤습니다. 너무 근본적이어서 오히려 프라이버시가 없는 상태에 정당화가 필요한 조건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신념으로 개발하는 소수는 찬사 대신 기소를 당합니다. 

프라이버시 우선 개발을 위한 투쟁

법적 투쟁

2022년 8월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Tornado Cash를 제재했습니다. 블록체인과 스마트 컨트랙트를 아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터무니없게 들리는 조치입니다. Tornado Cash는 Ethereum에서 작동하는 변경 불가능한 스마트 컨트랙트 모음입니다. 여러 사용자의 자금을 한데 모은 뒤 새로운 지갑으로 동일한 금액을 출금하게 해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전통적인 연결을 끊습니다. 간단히 말해 Tornado Cash는 사용자에게 프라이버시를 제공하기 위해 Ethereum에서 작동하는 탈중앙화 암호화폐 믹서입니다. 

OFAC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코드를 제재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제재가 부과된 지 이틀 뒤 네덜란드 당국은 Tornado Cash 코드를 작성하고 공개한 Alexey Pertsev를 체포했습니다. 2024년 5월 그는 5년이 넘는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년 뒤 미국은 공동 창립자 Roman Storm과 Roman Semenov를 자금 세탁, 제재 위반, 무허가 송금 사업 운영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2026년 6월 현재도 이 법적 다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Tornado Cash는 자금을 보관하지 않습니다. 핵심 컨트랙트는 변경할 수 없으므로 Pertsev와 Storm, Semenov가 원해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정부의 주장은 사실상 프라이버시 보호 코드를 공개하고 그 코드로 연결되는 웹사이트를 유지하는 행위가 금융 사업을 “운영”하는 것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2025년 8월 뉴욕 남부지방법원 배심원단은 무허가 송금 혐의에 대해 Storm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지만, 나머지 두 혐의에는 평결이 엇갈렸습니다. 법무부는 배심원단이 합의하지 못한 혐의에 대해 재심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4월 심리에서 담당 판사는 Tornado Cash를 단순히 만든 행위가 범죄인지 검사에게 물었고, 검사는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믹서에 “깨끗한” 크립토가 대량으로 포함돼 있을수록 불법 자금을 더 효과적으로 숨길 수 있으므로 이를 유지하는 행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단지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법 준수 사용자를 지원하는 행위 자체가 자금 세탁을 조장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프라이버시의 합법적 사용이 불법 행위를 위한 위장으로 재해석됩니다.

이제 함께 말해 봅시다. 불투명하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법무부의 또 다른 사건인 Samourai Wallet 사건은 모호함이 덜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CoinJoin 기반 프라이버시 기능을 갖춘 비수탁형 Bitcoin 지갑을 만든 Keonne Rodriguez와 William Lonergan Hill은 수십 년의 징역형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Rodriguez는 5년, Hill은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Samourai 관련 체포가 이뤄진 지 며칠 만에 Wasabi Wallet은 미국 사용자를 차단했고, 곧 믹싱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했습니다. 알려진 법적 문제가 없던 자기수탁형 Lightning 지갑 Phoenix Wallet은 미국 앱 스토어에서 철수했습니다. Sparrow Wallet은 기소 다음 날 Whirlpool 통합을 비활성화했습니다. 누구도 이를 명령하지 않았지만, 두 건의 기소가 업계 전체를 길들였습니다. 수감자들은 자신이 감시당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언제나 감시당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한편 프라이버시가 추가 기능이 아니라 프로토콜에 내장된 Monero는 규제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규제 압박 속에서 거래소들이 잇따라 Monero를 상장 폐지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EU의 암호자산시장(MiCA) 규정, 구체적으로 Reg. 2023/1114, Art. 76(3)에 따라 이러한 입장이 법제화됐습니다. 이 조항은 보유자와 해당 트랜잭션 내역을 식별할 수 없는 경우 암호자산 서비스 제공자가 익명성 강화 코인을 취급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EU의 새로운 자금세탁 방지 규정 Regulation (EU) 2024/1624는 2027년 7월 10일부터 이러한 방침을 시행하려 하며, 서비스 제공자가 보유자와 트랜잭션 사이의 연결 관계를 유지하도록 요구합니다.

패턴은 분명합니다. 애플리케이션 계층의 프라이버시는 기소로 이어지고, 프로토콜 계층의 프라이버시는 상장 폐지로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크립토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ETF와 스테이블코인, RWA, 전략적 비축을 통해 적극 수용하고 있습니다. 반대 대상은 정확히 불투명성입니다. 크립토가 완벽한 감시 도구로 남는 한 대체로 환영받습니다.

이 모든 조치의 법적 근거는 앞서 언급한 기소 사례가 시사하는 것만큼 탄탄하지 않습니다. 2024년 말 제5연방순회항소법원은 Van Loon v. Department of the Treasury에서 Tornado Cash 같은 변경 불가능한 컨트랙트는 외국의 “재산”이 아니므로 현행법에 따라 제재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2025년 3월 재무부는 Tornado Cash를 제재 목록에서 완전히 삭제했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코드 자체는 법적으로 복권됐지만, 코드를 작성한 개발자들은 재심에 직면했습니다. 도구는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도구 제작자는 다릅니다. 이는 자신의 법적 논리에 확신하는 시스템의 행동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본보기로 삼는 시스템의 행동입니다.

철학적 투쟁

이러한 법적 주장의 핵심에는 해당 도구가 자금 세탁과 제재 회피, 그보다 더 나쁜 일에 사용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를 부정할 진지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주장은 범죄자가 사용한다는 이유로 도구를 금지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현금은 최초의 프라이버시 기술입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고 주인이 바뀌며 송신자도 수신자도 식별하지 않고, 중개자 없이 즉시 결제되는 익명의 무기명 수단입니다. 인류 역사상 사실상 모든 길거리 범죄에 사용된 결제 수단입니다. Tornado Cash 소송의 논리대로라면 현금은 엄청난 규모의 무허가 송금 사업이며, 이를 발행하는 재무부가 그 운영자입니다. 

종단 간 암호화도 같은 시험을 반복해서 겪습니다. 몇 년마다 정부는 테러리스트가 Signal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고 “좋은 사람들”을 위한 백도어를 요구합니다. 그때마다 암호학자들은 좋은 사람들을 위한 백도어가 모두를 위한 백도어라고 끈기 있게 설명합니다. 통신을 대상으로 할 때는 이 주장이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돈을 대상으로 할 때는 신중한 조치라고 생각하도록 어느새 설득당했습니다. 금융 관계가 문자 메시지보다 덜 내밀하다고 볼 수는 있지만, 누구에게 언제, 얼마를, 얼마나 자주 송금하는지 공개하면 한 사람이 생성할 수 있는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은 데이터 흔적이 남습니다.

2025년 영국 내무부는 수사권법에 따라 Apple에 비밀 “기술 역량 통지”를 보내 암호화된 iCloud 데이터에 접근할 백도어를 요구했습니다. Apple은 백도어를 만드는 대신 가장 강력한 암호화 기능인 Advanced Data Protection을 영국에서 완전히 철회했습니다. 2025년 말 정부는 요구를 그대로 갱신했습니다. 이러한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조차 범죄입니다. 국가는 시민에게 “투명성”을 요구하면서 자신에 대한 투명성은 범죄로 만듭니다.

자동차는 어떻습니까? 도주 운전자가 사용한다는 이유로 금지해야 할까요? 인터넷은 어떻습니까? 미국 법은 오랫동안 이중 용도 기술의 원칙을 인정했습니다. 실질적인 합법적 용도가 있는 도구는 범죄자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금지품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원칙을 모든 영역에 적용하지만, 유독 금융 프라이버시 인프라에는 적용하지 않는 듯합니다. 

실증적 증거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블록체인에서 발생하는 금융 범죄는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의 불법 행위와 비교하면 언제나 미미합니다. HSBC가 Sinaloa 카르텔을 위해 수억 달러를 이체하고도 기소 유예 합의와 벌금만 받은 사실을 잊었습니까? Danske Bank 에스토니아 지점이 약 2천억 유로의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처리한 사실을 잊었습니까? 그 파이프라인을 노트북으로 구축한 임원은 없으며, Roman Storm이 직면한 상황에 놓인 임원도 없습니다. 대규모로 자금을 세탁한 기관은 사업 비용에 불과한 벌금을 냅니다. 평범한 사람을 위한 프라이버시 코드를 작성한 개발자는 경고의 본보기로 투옥됩니다.

프라이버시 도구를 제거해도 범죄자의 프라이버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교한 범죄자에게는 이를 위한 관할권과 페이퍼컴퍼니 구조,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없는 나머지 모든 사람의 프라이버시만 사라집니다. 권력자는 불투명한 상태로 남고, 나머지 우리는 훤히 드러납니다. 

나쁜 행위자가 프라이버시 도구를 사용하는지는 애초에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나쁜 행위자의 존재가 다른 모든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폐지할 근거가 되느냐가 쟁점입니다. 현금과 봉인된 편지, 커튼, 도주 차량, 인터넷을 마주한 이전의 모든 세대는 한목소리로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그렇다고 답하도록 설득당한 최초의 세대입니다. 

변화를 향한 진정한 길

이 정도 규모의 글을 쓸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진단이 너무 총체적이어서 어떤 처방도 부족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Fisher는 병을 무서울 만큼 정확히 지목했지만, 끝내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 정치의 재등장을 암시하며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대표작을 마무리했습니다. Han은 심리정치를 탁월하게 진단하고 저항 방식으로 바보주의를 제시합니다. 현재의 “retardmaxxing” 담론을 생각하면 묘하게 어울립니다. Han은 그리스어 idiotes에서 아고라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사적 개인을 뜻하는 용어를 끌어냅니다. 우리에게는 비생산적이고 색인되지 않으며 판독 불가능한 존재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답입니다.

하지만 Han이 제시하는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미학적 태도입니다. 색인이 경제생활의 기반인 상황에서 실제로 어떻게 색인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을까요? Han은 답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생산성을 거부하기만 한다면 원형감옥은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익숙한 수단도 별반 낫지 않습니다. 더 강력한 로비와 우호적인 규제 당국자 선출, 개발자 보호의 법제화는 모두 제한적으로 중요합니다. 제5연방순회항소법원이 내린 “재산”의 법적 정의에 관한 판결은 의회가 단 한 번의 오후에 개정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입니다. 국가의 자제에 의존하는 권리는 권리가 아닙니다. 다음 행정부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 취소할 수 있는 허가일 뿐입니다.

소비로도 프라이버시를 구할 수 없습니다. 올바른 코인을 사고, 올바른 기능을 켜고, 올바른 VPN을 구독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소비 채널 자체가 감시입니다. 저항은 제품 카테고리가 아닙니다.

사이퍼펑크가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Fisher와 Han과 달리 명확한 실천 방식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코드로 구현된 인프라입니다. 목표는 디지털 생활의 기반에 프라이버시를 내장하는 것입니다. 불투명성이 일탈적인 선택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태가 되고,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나 프리미엄 기능으로 되팔 수 없는 환경입니다. 사이퍼펑크 인프라는 Han의 바보주의를 물질적으로 가능하게 합니다. 프로토콜 수준의 불투명성은 인간 수준의 인격을 위한 선결 조건입니다.

국가는 이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소하는 것입니다. Storm 재심과 Samourai 형량, Monero 상장 폐지, EU가 예정한 익명성 말살은 모두 프라이버시 인프라를 정치적 위협으로 정확히 파악한 시스템의 행동입니다. 사이퍼펑크는 1993년 코드가 유일하게 의미 있는 저항 방식이라는 데 승부를 걸었습니다. 30년 뒤 이를 억압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 선택이 옳았음을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이퍼펑크 정신의 부활

앞으로 나아갈 길은 새롭지 않습니다. 훨씬 나은 도구를 들고 원래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프라이버시는 디지털 존재의 기본 상태이며, 너무 근본적이어서 오히려 그 부재에 정당화가 필요한 조건입니다.

Solana의 최초 영지식 syscall을 작성하고 ZK Compression을 구축한 팀인 Helius의 Light Protocol 인수는 암호학과 독보적인 대규모 배포 역량을 결합합니다. 사이퍼펑크가 꿈꾸던 도구를 곧 전 세계 누구나 Solana에서 대규모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명백한 반론이 있습니다. 이 글은 모든 저항 행위가 제품 카테고리로 변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소비만으로는 프라이버시를 구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구분이 중요합니다. 제품으로서의 프라이버시는 구매하는 토큰, 활성화하는 기능, 프라이버시를 원한다는 고백이자 옵트인입니다. 기반으로서의 프라이버시는 인프라입니다. 모든 개발자에게 열려 있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맞게 구성할 수 있으며, 불투명성을 일반적인 트랜잭션 상태로 만들도록 설계됩니다. 전자는 사이퍼펑크 정신을 상품화하지만, 후자는 이를 실제로 구현합니다.

두 번째 반론도 있습니다. 선택적 공개 프라이버시는 허가증이 붙은 감시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보호된 시스템에서 사용자가 감사자나 거래 상대방에게 트랜잭션의 일부 측면을 증명할 수 있다면, 이미 규제 준수에 굴복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사이퍼펑크가 먼저 이 경계를 그었습니다. Hughes는 프라이버시를 세상에 자신을 선택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힘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는 선택 가능성을 전제합니다. 프라이버시에 필요한 아키텍처는 비자발적인 판독 가능성에 저항해야 합니다. 글로벌 뷰 키나 프로토콜 수준의 블랙리스트가 없어야 하며, 기반 자체에 감시가 내장돼서는 안 됩니다. 공개가 이뤄질 때는 사용자가 결정합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재량으로 선택적으로 증명합니다. 누구에게 언제 공개할지 사용자가 결정하는 시스템은 Hughes의 정의가 프로덕션에서 실행되는 것입니다. 사용자의 선택과 관계없이 발행자나 국가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은 또 다른 원형감옥입니다. 사용자가 통제하는 공개와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는 공개의 차이가 프라이버시 인프라와 프라이버시로 위장한 감시를 가르는 경계입니다.

Zcash는 때가 왔음을 입증합니다. 처음 10년간 보호 기능은 선택 사항이었고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보호된 공급량은 한 자릿수 비율에 불과했으며, 보호 풀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의심받았습니다. 이제 지갑은 보호 주소를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통합은 늘어났으며, 보호된 공급량은 약 3배 증가해 전체 ZEC의 거의 3분의 1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트랜잭션이 보호 풀을 거칩니다. DigiCash가 누구도 체감하지 못한 질병의 치료제를 팔다 사라진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실제 가치가 자발적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암호학은 결코 병목이 아니었습니다.

Zcash는 전용 체인에서 작동하는 암호화된 가치 저장 수단이자 프라이빗 머니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아직 입증되지 않은 것은 프라이빗 경제생활입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통화로 표시되고, 이미 의존하는 애플리케이션과 조합할 수 있으며, 일상적인 규모로 작동하는 결제와 대출, 급여, 토큰화 자산입니다. Zcash는 프라이빗한 장소로 이동하라고 요구합니다. 더 어려운 문제는 이미 살고 있는 장소를 기본적으로 불투명하게 만들고 선택에 따라 공개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미 사용하는 체인에서 프라이빗 경제생활을 구현해야 합니다. Solana는 그 전선 중 하나이며, 다른 생태계에서도 수많은 팀이 프라이버시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팀들을 공개적이고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Storm의 재심과 여기서 만들어질 선례는 다음 세대 프라이버시 엔지니어가 공개적으로 개발할지, 아니면 편리한 관할권에서 가명으로 개발할지를 결정합니다. 

Bitcoin은 암호학적 화폐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Ethereum은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Solana는 대중 규모로 확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아직 입증되지 않은 것은 이 모든 것을 수행하면서도 인간의 인격과 양립할 수 있는지입니다. 금융 시스템이 모든 참여자를 영구적으로 판독 가능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빠르고 개방적이며 검증 가능할 수 있는지는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프라이버시는 암호화폐를 대중에게 제공하기 위한 마지막 확장 영역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질병을 느끼기 시작하기 30년 전에 사이퍼펑크가 가장 먼저 찾아낸 영역이기도 합니다.

Fisher는 대안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시스템의 가장 깊은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Han은 시스템이 성과를 보일 자유를 통해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원장은 “만약을 위해” 모든 것을 영원히 공개합니다. 이 세 가지에 맞서 Hughes가 1993년에 내놓은 답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정부와 기업 또는 기타 대규모 조직이 프라이버시를 허락해 주리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권력을 갖고 진정한 인격을 누리려면 우리가 직접 프라이버시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구축하고, 운영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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